글로벌 모터스포츠에서 레이싱 팀을 구성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팩토리(Factory) 또는 웍스(Works) 팀이라고 불리는 차량 제조사에서 직접 운영하거나 제조사가 직접 관여해 참가하는 팀과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레이싱팀들이 차량을 제조사로부터 지원을 받으며 참가하는 커스터머(Customer) 팀이다.

페라리의 팩토리 팀인 'AF 코르세'가 운용하는 '페라리 499P' 르망 하이퍼카 / 사진 출처 = 르망 24시
페라리의 팩토리 팀인 'AF 코르세'가 운용하는 '페라리 499P' 르망 하이퍼카 / 사진 출처 = 르망 24시

유럽을 대표하는 커스터머 팀은 'AF 코르세'(AF Corse, 이탈리아) 와 '만타이 레이싱'(Manthey Racing, 독일)이 있다. 

이들은 각각 '페라리'와 '포르쉐'의 커스터머 팀이었으나 현재는 이 차량 제조사들의 팩토리 팀으로 선정되어 세계 내구레이스 챔피언십인 'WEC'에서 각각 페라리의 르망 하이퍼카와 포르쉐의 GT3 차량을 출전시킨다.

아시아의 대표적인 커스터머 팀은 '앱솔루트 레이싱(Absolute Racing)'과 '크래프트 밤부 레이싱(Craft-Bamboo Racing)'이다.

'크래프트 밤부 레이싱'은 '메르세데스-AMG'의 커스터머 팀으로써 '메르세데스-AMG GT3 Evo' 차량을 운용하지만 '앱솔루트 레이싱'은 '아우디 LMS GT3 EVO II', '포르쉐 911 GT3 R', '람보르기니 우라칸 슈퍼 트로페오 EVO2' 등 수많은 차량 제조사의 차량으로 다수의 챔피언십에 출전하고 있다.

대한민국에는 이런 팀이 없을까?

이탈리아 발레룽가 서킷에서 레이스를 준비하는 대한민국 국적의 '레이스그래프' / 사진 출처 = 레이스그래프
이탈리아 발레룽가 서킷에서 레이스를 준비하는 대한민국 국적의 '레이스그래프' / 사진 출처 = 레이스그래프

우리나라에는 '2023 람보르기니 슈퍼 트로페오 아시아'에 첫 데뷔를 알린 대한민국 국적의 '레이스그래프(Racegraph)'가 있다.

팀의 소유주이자 메인 엔지니어를 겸하는 '조순호' 대표는 고려대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하고 한국의 레이싱팀에서 엔지니어로 활동하던 중, 2023년 처음으로 직접 팀을 창단해 출전했다.

'레이스그래프'가 출전하는 '람보르기니 슈퍼 트로페오'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원-메이크 시리즈로,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 총 세 개의 대륙에서 지역별로 열리며, 각 대륙의 마지막 라운드는 월드 파이널로 한 자리에서 개최된다. 

한국타이어를 장착한 레이스그래프의 람보르기니 레이싱카 / 사진 출처 = 레이스그래프
한국타이어를 장착한 레이스그래프의 람보르기니 레이싱카 / 사진 출처 = 레이스그래프

현재 '람보르기니 슈퍼 트로페오'에 사용되는 레이스카는 '람보르기니 우라칸 슈퍼 트로페오 EVO2' 차량으로, 5.2L 자연흡기 V10 엔진을 장착해 총 620마력을 생산해낸다.

'우라칸 슈퍼 트로페오' 차량은 원래 '람보르기니'의 원메이크 시리즈에만 사용되는 차량이지만, 2020년부터 GT2 킷을 개발한 '람보르기니'가 '우라칸 슈퍼 트로페오'를 'SRO GT2' 레이스카로도 등록해, 현재는 'GT2 유러피언 시리즈', '24시 시리즈' 등에도 출전하고 있다.

람보르기니 슈퍼 트로페오 경기는 한국타이어가 레이싱 타이어를 독점 공급하는 경기로 2023 시즌 강원도 인제스피디움에서 한 라운드 경기가 개최되기도 했다.

'레이스그래프'의 소유주 겸 엔지니어, 조순호 대표 / 사진 출처 = 레이스그래프
'레이스그래프'의 소유주 겸 엔지니어, 조순호 대표 / 사진 출처 = 레이스그래프

조순호 대표는 "엔지니어 활동만 오래 해오다보니, 언젠가부터 규격화된 레이스카를 넘어 선진 레이스, 해외 레이스 같은 것에 갈증이 생겼다"고 말하며 해외 레이스 도전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국내 모터스포츠 이력만 가지고는 해외 어떤 레이스 팀에서도 엔지니어로 활동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국내 모터스포츠 경기는 해외 레이스와 교류도 거의 없는데다 레이스카도 많이 달라서 해외 레이스에 접근이 어려워 고민을 하던 중 2022년 차량을 구매해 직접 팀을 꾸리는 파격적인 행보를 실행에 옮겼다.

처음 팀을 만들며 조 대표는 'ELMS', 'IMSA' 등에 출전하는 LMP3 레이스카 구매를 원했었다.

레이스카 구매를 위해 영국 현지까지 직접 방문해 매물까지 보고 왔지만 막상 보러가니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았고, 차 상태도 썩 좋은 편이 아니어서 결국 구매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2022 로드 투 르망'에 출전하는 No.69 '쿨 레이싱'의 '리지에 JSP320' LMP3 프로토타입 / 사진 = 이서연 기자
'2022 로드 투 르망'에 출전하는 No.69 '쿨 레이싱'의 '리지에 JSP320' LMP3 프로토타입 / 사진 = 이서연 기자

그러던 중, 지인을 통해 '람보르기니'를 한 번 해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을 받았다.

람보르기니의 레이스카는 퍼포먼스나 내구성이 좋은 차이기도 하고 마침 매물이 있었던 상황이라 '레이스그래프'는 '람보르기니 우라칸 슈퍼 트로페오 EVO2'를 레이스카로 2022년 7월에 구매해 인도받았다.

조순호 대표는 구매한 레이스카를 한국에 가져오고 "처음엔 공부 좀 해볼까 해서 여기저기 뜯어보고 해볼만 하겠다고 느꼈다"며 "사실 제 좌우명이 'NOW or NEVER (지금이 유일한 기회다)'라 저는 어차피 나중에 후회할 거라면 빨리 실패하자 주의다(웃음)"라며 본인의 좌우명과 철학을 설명했다.

트랙을 달리는 '레이스그래프'의 '람보르기니 우라칸 슈퍼 트로페오 EVO2' / 사진 출처 = 레이스그래프
트랙을 달리는 '레이스그래프'의 '람보르기니 우라칸 슈퍼 트로페오 EVO2' / 사진 출처 = 레이스그래프

레이스카를 인도받은 뒤로 당시 차량은 보유하고 있었지만 아시아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유효한 시기여서 2022년 아시아의 대부분 대회가 개최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람보르기니 스콰드라 코르세' (Lamborghini Squadra Corse) 측에서 2023년에 다시 '아시아' 시리즈를 개최한다고 연락을 받았고, 대회를 나가보는게 좋겠다는 욕심이 들어 2023시즌에 도전하게 됐다고 출전 계기를 전했다.

커스터머 팀의 운영 방식에 대해 조 대표는 "커스터머 팀의 개념을 쉽게 정의하면, '레이스카를 렌트하는 렌트카 회사'가 아닐까 한다. 레이스에 나가고 싶은 고객이 차량을 렌탈하면 그에 따라 출전하는 레이스에 관련된 집약적인 서비스를 해줄 수 있는 팀이다"고 덧붙였다.

'2023 GTWC 아시아' 챔피언십에서 스즈카 서킷을 달리는 '크래프트 밤부 레이싱'의 '메르세데스-AMG GT3 Evo' / 사진 = 진영석 기자
'2023 GTWC 아시아' 챔피언십에서 스즈카 서킷을 달리는 '크래프트 밤부 레이싱'의 '메르세데스-AMG GT3 Evo' / 사진 = 진영석 기자

조 대표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앱솔루트 레이싱'과 '크래프트 밤부 레이싱'을 언급하며, 우선 커스터머 팀은 경기에서 실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결과와 능력에 따라 성적을 낼 수 있는 제조사를 선택하고,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제조사의 팩토리 드라이버를 제공받을 기회도 생긴다. 

커스터머 팀들은 이런 치열한 경쟁을 펼치며 쌓은 팀의 이미지만큼 레이스에서도 우월한 위치에 오를 수 있다. 

'레이스그래프'는 우리나라 국적의 첫 커스터머 레이싱팀의 탄생이다.

경기를 준비하는 레이스그래프 / 사진 출저 = 레이스그래프
경기를 준비하는 레이스그래프 / 사진 출저 = 레이스그래프

국내 모터스포츠 경기들은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진행되지만, 세계적으로 가장 큰 모터스포츠 카테고리에는 'FIA 포뮬러 1', 'FIA WEC', 'FIA WRC' 'GT 월드 챌린지' 등의 유명한 챔피언십들이 여러 국가를 넘나들며 경기를 갖는다.

'레이스그래프'가 참가하는 '람보르기니 슈퍼 트로페오 아시아' 역시 마찬가지다.

'람보르기니 슈퍼 트로페오 아시아'는 2023 시즌에는 말레이시아에서 시작해 호주, 일본, 대한민국(인제 스피디움), 중국을 거친 뒤 이탈리아에서 전세계 람보르기니가 월드 파이널 경기로 시즌을 마무리 했다.

포뮬러 원 대회를 앞두고 DHL 및 타 운송사로부터 전달받는 대회용 물자 / 사진 출처 = Lars Baron
포뮬러 원 대회를 앞두고 DHL 및 타 운송사로부터 전달받는 대회용 물자 / 사진 출처 = Lars Baron

조 대표는 갓 데뷔한 팀에도 불구하고, 물류와 관련해 준비하는 과정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며 "맨땅에 헤딩식으로 제가 좀 무모하게 시작을 했던건 있다. 사실 처음엔 그냥 규격화된 레이스카를 가져와서 공부해 보자라는 마인드가 가장 컸다"고 설명했다.

해외 대회의 경우, 차량 및 레이스 현지에서 필요한 물품들의 운송은 대부분 '오거나이저' 또는 '프로모터'가 관리를 한다. 참가하는 팀들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포뮬러 원을 예로 들면, DHL이 공식 운송사이고, ‘스쿠데리아 페라리’ (Scuderia Ferrari)는 ‘세바 로지스틱스’(CEVA Logistics)가 물류 운송을 담당하며, 일부 팀들은 운송사 파트너가 따로 있다.

'레이스그래프' 소속 미캐닉 /사진 출처 = 레이스그래프
'레이스그래프' 소속 미캐닉 /사진 출처 = 레이스그래프

그렇다면 엔지니어와 미캐닉은 ‘레이스 위켄드’ 동안 언제부터 레이스카에 손을 댈 수 있고 무엇을 준비할까? 

시즌 대부분 메인 경기가 주말에 펼쳐지는 일정으로 주최 측의 경기장 출입 허가는 보통 수요일 아침이다. 

'레이스그래프'의 본격적인 경기 준비 시작은 엔지니어와 미캐닉이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현지에 도착할 수 있도록 일정을 잡는다. 경기장이 열리더라도 레이스카 보다 피트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 대표는 '경기장이 열리기 전부터 레이스카를 미리 인도받아 사전 정비에 시간을 쏟는 편'이라고 말한다. 

사고가 크게 발생한 팀도 2-3일 만에 섀시를 전부 교체한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차량 한 대분의 여분 부품을 준비해 놓는다고 보면 된다.

경기가 펼쳐지는 레이스 주말에는 시간 여유가 없으니, 사전에 최대한 밀도 있게 준비를 갖추는 편이다.

본선 레이스 3일 전부터 개러지에서 차량을 준비하는 '람보르기니 슈퍼 트로페오' 출전 팀들의 모습 / 사진 출처 = 레이스그래프
본선 레이스 3일 전부터 개러지에서 차량을 준비하는 '람보르기니 슈퍼 트로페오' 출전 팀들의 모습 / 사진 출처 = 레이스그래프

조 대표는 “첫 출전이라 한 경기, 한 경기 늘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드는 만큼 저희도 프로모터와 비례할 정도로 경기장에 일찍 간다. 올해 처음 시작하는 팀이여서 그런 부분에 있어 실수를 하지 않고, 드라이버에게 최상의 컨디션의 레이스카를 제공 할 수 있게 미리 가서 준비를 해두는 편이다”고 전했다.

경기 후, 한 달 정도의 텀이 주어지면 드라이버 및 팀도 일단 자국으로 돌아간다.

차량 데이터 축적을 위해 타이어의 온도와 공기압을 체크하는 미캐닉 / 사진 출처 = 레이스그래프
차량 데이터 축적을 위해 타이어의 온도와 공기압을 체크하는 미캐닉 / 사진 출처 = 레이스그래프

‘레이스그래프’는 총 3명의 기술직 팀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엔지니어 한 명, 미캐닉 두 명과 코디네이터이다.

미캐닉의 역할은 레이스카를 전반적으로 정비하고 엔지니어의 명령에 따라 셋업을 변경하는 것이다. 레이스카 관리에 대한 전반적인 부분을 담당한다.

‘레이스그래프’의 코디네이터는 파트타임으로 운영하며, 팀 해외 출장 시 해외일정을 짜주는 역할을 맡는다. 해외 호텔 예약부터 물류, 비행기 예약까지 전반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차량의 데이터를 확인하는 '조순호' 엔지니어 / 사진 출처 = 레이스그래프
차량의 데이터를 확인하는 '조순호' 엔지니어 / 사진 출처 = 레이스그래프

조 대표는 “비용적인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 사람을 많이 쓸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정비를 넘어 감독, 레이스 코치, 기상 및 노면 온도 체크 등의 체크를 모두 대표 본인이 도맡아 하며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팀 소속 드라이버 또한 세 명의 인력이 팀의 차량을 정비하고 셋팅하는 것에 놀라워 했다고 웃으며 말한다.

첫 데뷔, 첫 경기부터 4경기 연속 포디움을 장식했던 '레이스그래프'의 트로피 / 사진 출처 = 레이스그래프
첫 데뷔, 첫 경기부터 4경기 연속 포디움을 장식했던 '레이스그래프'의 트로피 / 사진 출처 = 레이스그래프

‘레이스그래프’의 데뷔전이었던 2023 시즌 첫 경기의 레이스1에서 프로암(Pro-Am) 클래스 3위로 시상대에 올랐고, 다음 날 치러진 레이스2에서도 3위로 시상대에 오르며 화려한 데뷔전을 가졌다.

2라운드 경기에서도 레이스1에 2위, 레이스2에서도 3위를 차지했고, 월드파이널에서도 13위까지 이름을 올리며 신생 팀의 저력을 보여줬다.

조 대표는 "힘든 도전이었고, 어렵게 시작했다. 첫 경기부터 시상대에 오르며 좋은 흐름으로 시작했지만, 시즌 중간 드라이버 라인업과 출전 클래스의 변경 등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었다"며 "그럼에도 큰 문제없이 마지막까지 한 시즌을 완주할 수 있었다는 건, 그만큼 팀의 완성도가 높아졌다 생각한다"고 시즌 소감을 전했다.

신생 팀의 저력을 보여준 '레이스그래프' / 사진 출처 = 레이스그래프
신생 팀의 저력을 보여준 '레이스그래프' / 사진 출처 = 레이스그래프

또한, 2023시즌 여섯 번의 레이스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드라이버들의 선택을 받은 팀이란 부분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 받고 있다.

세계적인 챔피언십에서 시즌 도중, 일부 팀은 중도 하차를 하기도 한다. 드라이버를 찾지 못했거나, 드라이버에게 선택받지 못했거나, 예산적인 문제 등이 있다.

한글로 '대한민국'을 새긴 '레이스그래프'의 레이스카가 글로벌 서킷을 질주하고 있다. / 사진 출처 = 레이스그래프
한글로 '대한민국'을 새긴 '레이스그래프'의 레이스카가 글로벌 서킷을 질주하고 있다. / 사진 출처 = 레이스그래프

조 대표는 올해 팀 운영을 하며 아쉽게 느낀 부분을 '연속성이 없던 드라이버 라인업'으로 꼽았다.

글로벌 경기에서 커스터머 레이싱팀은 레이스카를 구매해서 준비를 하고 드라이버를 모집해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춰주는 역할을 한다. 

조 대표는 "이미 일부 드라이버가 내년에도 ‘레이스그래프’와 함께 출전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쳐 긍정적인 신호가 있다"고 말하며, '시즌 내내 지속되는 드라이버 라인업까지 보완하는 것이 목표'라 전했다. 

세계적인 슈퍼카 브랜드 람보르기니에 당당히 한글로 '대한민국'을 세기고 글로벌 모터스포츠에 도전장을 던진 우리나라 첫 커스터머 레이싱팀 ‘레이스그래프’는 2024시즌에는 두 대의 레이스카로 출전을 목표로 시즌 준비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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