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은 최근 재계 총수들을 만나며 존재감을 뚜렷이 했다. 사진은 정 수석부회장과 구광모 LG 대표. 제공=LG그룹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은 최근 재계 총수들을 만나며 존재감을 뚜렷이 했다. 사진은 정 수석부회장과 구광모 LG 대표. 제공=LG그룹

현대자동차가 ‘갑’으로 올라섰다. 미래 모빌리티 개발을 앞두고 ‘배터리 쇼핑’에 나서면서다.

자동차 산업 불황으로 다소 위축됐던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모처럼 재계 주목을 받고 있지만, 실속을 챙길수 있을지에는 의견이 엇갈린다.

5일 재계에 따르면 정 부회장은 이르면 7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만날 예정이다.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와 관련해 협력을 논의하려는 목적으로 추정된다. 장소도 충남 서산 SK이노베이션 공장이 유력하다.

앞서 정 부회장은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구광모 LG 대표와 잇따라 회동한 바 있다. LG와는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 공급에 이어 동남아시아에 배터리 합작사를 설립하는 등 대형 거래까지 성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현대차가 이미 LG화학과 손을 잡은 셈이지만, 최태원 회장이 정 수석 부회장을 만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현대차가 ‘갑’이 됐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전기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상황에서, 현대차가 올 들어 4월까지 1만8000대를 판매하며 전기차 5위를 차지하며 ‘큰손’으로 떠오르면서다.

내년에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를 본격 상용화할 예정이어서, 테슬라와 GM, 폭스바겐그룹에 이은 전기차 명가 자리를 굳건히 할 전망이다.

LG화학이 신차 배터리 1차 공급사 자리를 확고히 했지만, SK이노베이션도 안정적인 수급을 위한 또 다른 공급사를 맡고 있다고 전해진다.

특히 배터리 업계에서는 LG화학이 1위 자리를 굳히는 가운데 SK이노베이션과 삼성SDI가 경쟁을 하고 있는 만큼, 현대차 공략에 힘을 쏟을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 들어 5월까지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점유율은 LG화학이 24.2%로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삼성SDI가 6.4%, SK이노베이션이 4.1%로 각각 4위와 7위다.

현대차 45EV 콘셉트. 제공=현대자동차

SK이노베이션이 현대차에 공급을 확대하면 순위가 뒤바뀔 수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정 수석 부회장이 배터리 업계 승부에 칼자루를 쥐고 있는 셈이다.

아울러 현대차는 여러 회사들을 만나 협력을 논의하는 것만으로, 배터리 공급 가격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문제는 실속이다. 전기차에서 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 가까운 수준으로 알려져있다. 자동차 업계 입장에서는 전기차를 열심히 팔아서 협력사 배를 불려주게 된다는 얘기다.

실제로 모 자동차사는 이같은 이유로 전기차 시장이 성장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전기차 대신 하이브리드와 차세대 모빌리티 개발에 전념하기로 했다고 전해졌다.

특히 현대차가 수소전기차를 차세대 주력 차종으로 개발하는 상황에서, 수소차 시대를 앞당기기보다 오히려 경쟁사를 '키워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당장 삼성전자는 최근 전고체 배터리를 상용화할 기반 기술 개발에 성공한 상태다. 전고체 배터리는 최대 주행거리를 대폭 늘릴 수 있는 제품으로, 현실화되면 충전 속도 등 수소차의 장점을 대체할 수 있게 된다.

일각에서는 현대차도 '울며 겨자먹기'로 전기차에 주력하고 있다는 견해도 내놓는다. 일단 수소차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기차 시장을 포기하면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단, 폭스바겐과 BMW 등 글로벌 업체 상당수가 배터리 셀을 공급받는 대신 배터리 팩만큼은 자체적으로 개발하며 기술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분위기인 만큼, 현대차도 전기차 주도권을 뺏기면 안된다는 시각도 있다.

자동차 업계가 배터리뿐 아니라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등 전장 시스템 대부분을 LG와 삼성 등에서 공급받고 있는 상황, 그나마 현대차는 현대모비스 등 전장 계열사를 통해 배터리를 제외하고는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데에 높은 평가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재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던 정의선 수석 부회장이 배터리 회동을 통해 모처럼 '갑'으로 떠올랐다"며 "이제부터는 미래 모빌리티 시대에서 실속을 어떻게 챙길지가 관건"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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