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취임 첫해 '로봇 빅딜'을 포함한 공격적인 혁신경영의 길을 내달리고 있다. 수천억원 사재를 털어 미래 로봇사업에 조단위 투자를 단행했다. IT(정보통신)-전장 계열사 재편에도 들어갔다.

이에 앞서 싱가포르엔 그룹 첫 글로벌 기술혁신센터의 첫 삽을 떴다. 새만금을 중심으로 수소경제 생태계 실증과 전기차 및 수소차 기술 투자계획도 구체화했다. 취임 후 두달여, 사실상 그룹 미래 성장동력의 대부분에 대한 새판 짜기에 들어간 것이다.

정 회장은 11일 인수를 최종 결정한 미국 첨단 로봇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80%(9500억원) 중 20%를 직접 매입한다. 현대차(30%)에 이어 정 회장이 2대주주다. 지분매입액만 2389억원이다. 그룹 총수가 사재를 투입해 대규모 M&A(인수합병)에 나선건 이례적인 일이다.

재계는 정 회장이 직접 지분을 매입한 것에 대해 "로봇 사업 육성에 대한 강한 의지와 책임감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로봇사업에 정 회장의 이름표를 달아놨다는 의미다.

이는 사업의 성과가 오너에게 직접 연결된다는 의미다. 보스턴다이내믹스가 R&D(연구개발) 중심 조직인 만큼 당분간은 가능성이 높지 않지만 돈을 벌면 정 회장이 배당을 받을수도 있는 구조다. 어쨌든 그룹 내 투자 우선순위를 정할때 로봇 관련 프로젝트를 앞단에 둘 수밖에 없다.

정 회장은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보스턴다이내믹스와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거듭난 현대차 역량을 더해 모빌리티 혁신을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와 UAM(도심항공모빌리티)에 로봇기술을 접목해 새로운 밸류체인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정 회장의 머릿속엔 이미 로봇 활용 계획이 서 있다. 정 회장은 지난해 10월 임직원들과 타운홀미팅을 갖고 "그룹 미래의 20%는 로보틱스 기술에서 나올 것"이라고 말했었다.

로봇 자체를 생산해 판매하는 것 뿐 아니라 로봇택시, UAM을 활용한 드론 등 기존 사업영역과 시너지를 내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날 단행한 계열사 사업재편도 같은 맥락이다. 수소전기차와 전기차, UAM 등을 첨단화 고도화 하는데 꼭 필요한 차량용 반도체 사업은 현대오트론에서 떼어내 최대 부품계열사 현대모비스로 통합시켰다. 현대모비스가 제어시스템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연구개발할 수 있게 됐다.

그러면서 현대오토에버와 현대엠엔소프트, 차량용 반도체를 떼어낸 현대오트론을 합병해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한 소프트웨어 전문기업으로 출범시켰다. 3사 합병 후 소프트웨어 인력만 4000여명에 이른다.

여기도 정 회장의 이름표가 달렸다. 정 회장은 합병 전 기준으로 현대오토에버 지분 9.57%를 보유하고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와 계열사 재편으로 현대차그룹은 미래 모빌리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강화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정 회장의 강한 의지로 추진중인 수소연료전지시스템 고도화가 더해지면 핵심 동력원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또 하나의 큰 축인 2차전지(배터리) 기술 역시 최근 수차례 독자적 R&D를 추진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자율주행 기술은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에서 고도화한다. 현대차의 2025전략에 명시한 모빌리티 디바이스(탈것), 모빌리티 서비스, 수소연료전지 등 3대 축을 모두 한 번씩 다잡은 셈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향후 급변하는 산업 환경 속에서 어떤 기업보다 빠르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게 정 회장의 생각일 것"이라며 "모빌리티 분야를 넘어 전 산업분야를 아우르는 의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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